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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방송50주년 기념으로 방송돤  '한국 교회를 빛낸 50인-44.김형모목사'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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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형모목사

 

지난 주에 우리가 나덕환목사님, 순천을 중심으로 해서 평생 그곳을 떠나지 않고 한 교회에서 거의 60년 동안 목회하셨던 목사님을 소개했는데, 거의 같은 시대 배경을 가지고 있고 같은 지역에서 또 오른팔, 왼팔처럼 활동하신 귀한 어른이 계십니다. 김형모 목사님이십니다.

 

이렇게 서로 격려가 되고 또 때로는 좀 경쟁도 되고 이런 분들이 계시면 훨씬 좋을 것 같애요.

 

 , 뭐 그런 이야기를 보통 하죠. 나훈아는 남진이 있고, 또 이미자와는 누굽니까. 패티김이네요. 그런데 오늘 소개해야 할 이분은 나덕환 목사님보다 세 살이 어립니다. 그러나 거의 같은 시대에 함께 활동했지요. 이분도 평생 순천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 이분은 전라남도 광양군 진상면에서 태어나서 순천 매산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전주 신흥학교, 그리고 평양에 당시 소재해 있던 숭실전문학교, 그리고 32세에 장로회 신학교에 진학하셔서 목사 안수를 받고 순천노회에서 봉사하는데, 벌교읍교회를 담임합니다. 그런데 이분이 순천 지역의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해 순천고등성경학교를 개설하여 교장으로 취임하고 후진들을 굉장히 많이 양성합니다. 이분이 순천 매산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강조해야 할 부분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매산학교는 1913년에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님들이 남쪽에 선교를 하면서 설립한 미션스쿨입니다. 성경을 주로 가르쳤던 학교인데요, 여기에서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특별히 목사님들만 1,000명 이상 배출됐습니다. 대단한 학교입니다. 이 학교 출신인데 여기에서 교장생활을 하면서 평생 후학을 양성하시는 어른이 바로 김형모목사입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 교회에서 활동하는 많은 목회자들 가운데 김형모 목사님을 위대한 스승으로 기억하시는, 그분을 본받아 멘토로 삼는 분이 많습니다.

 

★ 이분이 순천에서 사역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랬는데 선교사님들이 이분이 출중하니까, 이분을 주선해서 미국에 가서 공부하도록 하셨습니다.

 

★ 유학을 보내셨군요.

 

 그렇죠. 선교사님들의 배려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해서 크게 쓰임받는 분들이 참 많은데 이분이 대표적인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틀란타 소재의 컬럼비아신학교에서 신학석사학위를 받습니다. 다시 버지니아 주에 있는 리치먼드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다시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 신학교에서 연구를 했고, 텍사스 주 오스틴 대학에서 신학박사 THD 학위를 취득합니다. 그리고는 매산중·고등학교에서 교장으로 취임해서 후학들을 많이 양성해 냅니다. 교장으로 재임중 제49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으로도 당선됩니다. 나덕환목사님, 지난주에 말씀드린 총회장되신 분이 46회 총회장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3년 뒤죠, 49회 총회장이 되어서 총회 차원에서 또 활동합니다. 65세 정년 퇴임할 때까지 매산학교 교장 선생님을 하셨고요. 그리고 퇴임하신 이후 지금 광주에 있는 호남신학교에서 최초의 한국인 교장선생님으로 취임해서 봉사하셨습니다. 이래저래 순천노회에서 38년 동안 봉사하셔서 그 공로로 순천노회 공로목사로 추대되어 있습니다.  

 

★ 지난 주에 알아본 나덕환 목사님과 함께 순천 지역, 남부 지역, 그리고 섬지역에서 크게 역할을 하싱 김형모 목사님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데요. 특히 매산학교를 중심으로 한 인재 양성, 그리고 그분들이 목회자가 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도전하셨던 목사님이십니다.

 

 좋은 모범을 삶으로 보여 주셨고요. 요즘 사립학교 특별히 미션스쿨들이 사학법 개정으로 인해서 많이 긴장해 있는데, 사립학교의 창학정신을 온전하게 회복하고 나아가야 한다 하는 차원에서 여러 가지로 염려하고 기도를 많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김형모 목사님은 하나의 좋은 모범을 보여서 오늘의 사학 특별히 기독교 사학들이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좋은 멘토의 역할을 하셔서 방향 설정하는 데 참고를 해야 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도 됩니다.

 

★ 그리고 40이 넘은 나이에 만학이셨어요.

 

 맞습니다. 사역을 하다가 유학했기 때문이에요. 이분이 중앙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돌아와 후학들을 양성하시고 평생을 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모습, 이런 것들이 오늘 후배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십니다. 안기창 목사님이 계십니다. 많이 연로하셨습니다만, 등대선교회를 창립하시고 이 남도 땅에서 교회 개척을 굉장히 많이 하신 어른이신데, 이분이 최근에 <선교 이야기>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거기에 김형모 목사님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대충 이렇습니다.

 선교사들 설립한 매산학교 폐교되고 조국 해방과 함께 개교하여 제 2대 교장으로 많은 인재를 길렀네. 1949, 미국 유학하여 컬럼비아 신학교 졸업, 리치먼드 유니온 신학교를 거쳐 텍사스 주 오스틴 대학 신학박사 학위 취득, 매산학교 교장 역임하면서 한국 전쟁 후 어려운 학업의 길을 열어 주고, 인재가 귀한 시대에 좋은 자리에서 손짓을 했으나, 명예 입신 원치 않는 그러한 진실된 목회자라네.” 38년 동안 순천교회 지켜 나가고 매산학교 교장으로 22년 봉직하고, 호남신학교 교장, 순천신학교 교장을 역임하면서 많은 후배 인재를 양성하셨네요.

 

★ 지난주 나덕환 목사님에 대해서 말씀드렸고, 오늘은 순천 매산학교에서 인재를 양성하시고 순천 지역에서 교회를 섬기신 김형모 목사님을 44번째 인물로 살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