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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회 김형모 총회장(통합측) 총회장 열전

2014. 12. 20. 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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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회  김형모 총회장

김형모(金炯摸,1906-1980)목사는 전남 광양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부모는 광주 선교부에서 사역하던 오웬(C. C. Owen,오원 또는 오기원)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관계로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에서 설립한 순천 매산학교에 진학을 하였으며,다시 상경하여 피어선성경학교에서 3년간의 교육을 받았다. 다시 전주신흥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평양으로 진출하여 평양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3년간 교육을 받고 다시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진학했다. 1938년 졸업과 동시에 그해 가을에 순천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벌교읍교회 담임목사로 목회의 길에 다시 나서기도 했다.

일제의 강제 출국을 당하는 변요한선교사 송별 시,순천 역에 나가 송별식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순천 경찰서에 수감되는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이 바로 순천지방 15인 사건으로 모두 구속이 되어 이때 김형모도 구속이 되었다. 여기에 구속되었던 15인에 대해서 그동안 교회에서 설교했던 노트를 모두 압수하여 분석한 결과 김형모목사는 중일전쟁을 비판한 설교 내용이 문제가 되어 결국 형을 받고 광주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이 일로 1년간 옥살이를 하고 출감했지만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비록 목회는 하지 못했지만 야산에 등산을 하면서 그 곳에서 바위를 붙잡고 기도하는 일이 그의 생활 전부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해방을 만나자 곧 순천으로 나와 순천성경학교의 문을 열고 농어촌 청소년들에게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큰 꿈을 심어 주면서 성경공부에 열중했다. 이렇게 활동하고 있을 때 일제말엽에 철수 했던 선교사들이 속속 순천에 모여 들자 이들 선교사들의 협력으로 1948년 미국 애틀란트에 자리잡고 있는 콜럼비아신학교에 2년간 유학을 하고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귀국 즉시 순천 매산중고등학교 교장의 직책을 맡아 청소년 교육에 힘을 쏟았다. 그 후 다시 광주에 있는 호남신학교 2대 교장을 역임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